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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4강 국격 높은 대한민국 만들기
2013.01.28  | 한세희
현 정부 들어서 “국격”은 국가 정책의 주요 화두였습니다. 지난 5년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마침내 국격이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외국의 브랜드전문기관이 평가한 국가 브랜드 순위가 19위에서 13위로 오른 것을 필두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등극, G20정상회담 개최,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의 활약, 높은 수준의 해외 원조,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비롯한 한류의 확산 등의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OECD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율, 거의 절반에 이르는 청년실업률,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소득의 양극화 등 암울한 삶을 체감하고 있는 다수의 국민들은 이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격”이라는 어휘는 아직 사전적으로도 정립되지 않은 개념이므로 국민들의 보편적 동의를 구하기 위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상식적으로 접근해 보면, 국격이란 “국가로서의 품격”을 뜻하는 것이고, 이는 “사람으로서의 품격”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갖고 있는 “인격”의 개념을 국가에 대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국가란, 마치 하나의 산이 그 자체로서 별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흙, 돌, 물, 나무, 풀, 새, 다람쥐, 그 외의 보이지 않는 무수한 생물들이 모여 순환하는 하나의 생태계인 것처럼, 하나의 영토 안에서 수많은 국민들과 그들의 삶이 상호작용을 하며 순환하는, 하나의 유기적 생태계입니다. 따라서 산 속에 있는 나무들이 말라 죽어 가고 새들이 떠나가는데 단지 산의 겉모습이 높기 때문에 좋은 산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좋은 산이란 모름지기 울창한 숲을 이룬 건강한 나무들이 뭇 생물들과 아름답게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어야 하며 그럴 때 신비스런 성스러움을 자아내게 되어 성산(聖山)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곧 산과 나무는 별개가 아니며, 건강한 나무가 없이 좋은 산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뜻하고, 이는 곧 국민들의 인격, 즉 “사람으로서의 품격”이 국격, 즉 “국가로서의 품격”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품격 있는 사람, 혹은 인격자로 인식하고 있을까요? 앞에서 국격이 높아졌다고 주장하는 견해를 인격에도 같은 방법으로 대입해 보면 우선 개인의 브랜드 파워 즉, 인지도가 높고 호감을 주는 유명인사일수록 인격자라는 말이 됩니다. 또한 중요한 기업이나 기관의 책임자가 되거나 상위 10%나 1% 등 고소득자일수록 인격 수준이 더 높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접근방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무언가 냉소적이고 거북한 반응을 일으키곤 합니다. 인격이란 결코 그러한 외적 지표로 등수를 매기며 가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게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소위 사회 지도층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낮은 품격을 증명하는, 매일같이 넘쳐나는 뉴스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대중적 사전에 나오는 인격의 윤리적 의미는 “선악을 판단, 자유롭게 의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위를 하는 바로 그 주체”입니다. 즉 인격은 튼튼한 자존감에 기초한 주체의식과 내적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극히 내면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인격자는 신분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스스로 자유롭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최고의 인격자들이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이 신분에 매이지 않거나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배척 받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면 훨씬 자명해집니다. 따라서 자신의 소득이 몇 등인지, 타인이 나를 얼마나 알아 주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은 오히려 내면적으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거나 무언가 심각한 인격장애를 반증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정으로 국격이 높아진다면 오히려 국격을 의식하지 않게 될 것이므로, 국격의 상승을 주장할 때마다 역설적으로 그 만큼 국가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품격 대신 국민 개개인이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진력하는 나라들이야말로 결과적으로 국격을 높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 나라의 국격을 올바로 알려면 타국들이 그 나라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보는 대신 그 나라의 국민들이 얼마나 품격 있는 삶을 누리고 있는지 살펴 보는 게 옳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북유럽의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나라들은 평범한 주택가의 식당에서도 특급 호텔의 식당과 별로 다르지 않은 수준의 청결과 품격이 느껴집니다. 식당의 종업원들이 당당한 자긍심을 갖고 손님을 맞으며, 비록 가격은 싸지 않으나 특색 있고 높은 수준의 메뉴를 제공합니다.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 역시 “빨리빨리” 하며 재촉하지 않고 점잖은 태도로 조용히 대화하며 품격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 몫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품격 있는 삶을 살게 된 것은 국가에서 예절 교육 등의 캠페인을 벌였기 때문도 아니고 국가의 경제 규모나 세계적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결국 그 근원을 추적해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원시적인 요소, 즉 국민들이 생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그들은 국민들이 평생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보장되는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자녀의 양육과 노후생활 등을 염려할 필요가 없어서 한국처럼 수많은 실직자나 은퇴자들이 무리하게 위험한 자영업에 뛰어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만이 창업을 하게 되므로 한국에서처럼 길거리에 식당, 편의점, 카페 등의 가게들이 지나칠 정도로 밀집하여 들어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과당경쟁으로 몇 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는 한국과는 달리, 대체로 안정된 수입을 얻으며 공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득이한 사정으로 폐업을 하더라도 다음 직장을 구할 때까지 생계 유지에 지장을 받지 않으므로 피차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무리한 방식의 경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경제적, 심리적 여유는 각자가 원래부터 추구했던 가치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고, 품질 향상을 통해 고객에게 더욱 품위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이러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나 기본적 생존에 필요한 소득이 보장되고, 소득이 높을수록 고율의 소득세가 부과되므로 이것이 일종의 완충제로 작용하여 물질 획득을 향한 지나친 사회적 긴장을 완화시켜 주는 효과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소득세가 낮을 경우 (그 과실의 대부분이 자신의 최종소득이 되므로) 지극히 미미한 수입을 놓고도 과도한 경쟁을 벌일 수 있으나, 소득세가 높을 경우 (거래의 최종 결과인 세후소득이 현격히 낮아지게 되어) 일정한 임계치 이상의 수입이 나지 않을 경우 경쟁을 포기하게 되므로 가격만을 놓고 싸우는 경쟁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품질 향상과 혁신을 통한 차별화에 초점을 두는 합리적 경쟁체제가 발달하게 됩니다.

이는 특히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게 되므로, 한국처럼 서비스산업이 낙후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요소입니다. 또한 생계의 위기에 내몰린 서민들이 사회보장을 통해 구매력을 얻게 되므로 이들의 활발한 소비를 통해 내수 경기가 활성화되어 결과적으로 일자리와 세수가 더욱 늘어나는, 국가 경제 전반에 걸친 선순환이 작동하는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게 됩니다.

국민의 품격에 관한 또 다른 예로 들 수 있는 나라가 부탄인데, 히말라야 산맥 고원지대에 위치한 이 작은 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1/10도 안 되지만 GDP 같은 경제지표 대신 국민행복지수(GNH; Growth National Happiness)의 향상을 목표로 국정을 펼치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이고, 실제로 아시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보고되곤 합니다. 북유럽처럼 사회보장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지 않은데도 그들이 실제로 누리는 삶의 질은 놀라울 정도로 높습니다. 의식주를 비롯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것을 돈을 매개로 삼아 구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우나, 그들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부분이 돈으로 환산되는 부분보다 훨씬 큰 삶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즉, 맑고 깨끗한 물과 공기 등 훼손되지 않은 자연으로부터의 혜택과 마을의 공동체적 삶에서 주어지는 신뢰와 협동과 보호 등, 어떤 면에서 우리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는 방식에 대해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있어서 타국을 흉내내지 않을 뿐 아니라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방문객의 수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북유럽은 시장경제 속에서 돈의 위력에 짓눌려 잃어버린 인간의 품격을 증세와 재분배를 통해 다시금 회복시킨 사례이고, 이는 작은 나라들뿐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인구도 많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독일에서도 오랜 기간 발전하며 성공적으로 정착되어 온 모델입니다. 사회보장제도라는 개념 자체가 1800년대 후반에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해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확립되었으니 독일이야말로 복지국가의 원조입니다. 이에 반해 부탄은 인간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돈이 아니라 자연과 공동체의 힘으로 지탱되는, 마을경제의 원형을 잘 보존함으로써 인류사회가 천성적으로 갖고 있던 인간의 품격을 지켜 낸 사례입니다.

한국은 돈으로만 환산해 보면 역사상 최단기간에 압축성장을 이룬 신화적인 나라가 되었으나, 부탄처럼 원래 마을공동체와 자연과의 조화 가운데 누리고 있던, 훨씬 더 소중한 원초적인 가치와 더불어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잃었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마을이 해체되며 뿔뿔이 흩어져 파편화되어 버린 개인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돈으로 환산하는 데 급급해졌고, 그렇게 매겨진 꼬리표로 인격을 저울질하며 만인의 만인을 상대로 한 무한경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심화되는 양극화의 골짜기 속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기본적 생계조차 위협받고 있는 것은 그들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일이며 결과적으로 국가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땅에 떨어진 인간의 품격을 다시 회복시키려면 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여 올바른 처방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이미 시장경제로 완전히 넘어와 마을경제가 해체되어 버린 우리의 입장에서는 부탄의 사례보다 북유럽의 사례가 더욱 현실성 있는 모델로 보입니다. 따라서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통해 국민 누구나 어떤 경우에도 품격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보장되는, 높은 수준의 민생을 추구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국격 향상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원 마련을 위한 적절한 수준의 증세는 지나친 경쟁의 완화를 통해 사회적 긴장을 줄여 주어 사회 전반의 품격을 높여 주고, 이렇게 지출된 복지 비용은 내수시장을 확장시켜 일자리를 늘리고 세수를 높여 주는 선순환구조의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인간의 품격에 경제가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큰 것은 사실이나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보다 더 소중하고 근본적인 가치의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류가 근대화와 세계화 과정에서 잃었던 자연과의 조화와 공동체적 가치들입니다. 비록 국가적 차원에서 시장경제를 포기하고 마을경제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시장경제가 갖고 있는 한계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병행되어야 합니다. 범람하는 상업주의와 과소비로 인한 지구환경 파괴와 기후변화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우리 미래 세대들에게 과연 지속가능한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런 면에서 자연과의 조화 및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부탄의 사례는 보다 근본적인 통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파편화된 개인들을 어떻게 다시금 자발적 공동체 활동들로 엮어 줄 수 있을지, 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협동과 창의적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할 수 있을지, 그리고 흙과 식물들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마을을 살리고 생태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일은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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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빈 | 2013.01.28 비밀번호   [삭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저에게도 이메일이 보내져서 받아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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