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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9강 카이스트와 핀란드 사이
2011.04.19  | 한세희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자살로 올바른 교육방식에 대한 논란이 거셉니다. 주로 과다한 경쟁체제와 징벌적 학비 부담, 전과목 영어 수업 등의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는데 그 논란의 핵심은 역시 철저한 개인별 경쟁체제에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MIT에서 오랜 기간 교수와 학과장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며 존경을 받았던 서남표 총장이 이렇게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것은 역시 미국 출신으로 노벨상 수상자였던 러플린 전임 총장에 이어 문화적 요소가 그 뿌리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세부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 방향성에서 미국식의 개인주의적, 성취지향적, 단기지향적 가치가 강조된 것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누차 강조해 온 것처럼 한국은 그 문화의 모든 차원에서 미국의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매우 특이한 나라입니다. 한국은 미국과 1개의 차원(성취지향성)을 공유한 일본이나, 2개의 차원(성취지향성과 낮은 불확실성회피성향)을 공유한 중국에 대비되고 지구상에서 가장 미국의 대척점에 있는 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외형상으로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또한 대중문화를 통해 미국과 매우 친숙해진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 생각, 느낌, 행동의 근간이 되는 무의식적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가치에 의거한 삶의 방식을 강요당하게 되면, 비록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나타낼 수는 있을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과다한 스트레스로 인한 후유증이 커지게 마련입니다.

그런 면에서 서구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리 문화와 훨씬 더 가까운 면들을 많이 갖고 있는 핀란드의 교육 방식은 좋은 안내자가 됩니다. 핀란드는 OECD에서 주관하는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테스트에서 지속적으로 세계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나라인데, 특이한 점은 학생들의 수업 시간이 짧고, 사교육이 전혀 없고, 영재반, 특목고 등 수월성 교육을 위한 경쟁체제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학생들의 높은 행복도를 유지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학업 성취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역시 뛰어난 성적을 얻고 있지만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으로 그 대가와 후유증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핀란드는 서구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개인주의가 약하고, 성취지향성보다 삶의 질 지향성이 훨씬 높고, 덜 단기지향적입니다. 즉, 집단주의적이고 삶의 질 지향적이고 장기지향적인 우리나라와 같은 방향성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개발한 교육방식은 놀랍도록 이 방향성과 일치합니다. 모든 학교들이 평준화되어 있고, 학교 안에서도 경쟁보다 협동을 가르칩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잘 못 하는 학생들과 팀을 이루어 그들의 성취를 도와 줍니다. 학생들의 개별적 성취보다도 협동을 통해 이루어 낸 공동체적 성취를 목표로 삼아 가르칩니다. 그들의 모토는 소수의 특별한 영재를 양성하는 대신 대다수의 뛰어난 보통사람들을 양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 전체의 보편적 지식수준이 대단히 높아졌고 이는 곧 세계 최상위권의 국가경쟁력으로 연결되었는데, 그와 동시에 세계 최상위권의 행복지수를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들처럼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사교육과 과도한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국민행복지수가 한 달음에 높아질 것이 분명합니다.

OECD의 평가를 보면, 도시와 지방, 지역적 차이 등도 미미하고 학부모들의 경제수준이나 교육수준 등 신분적 차이와 상관 없이 대다수의 학생들이 고르게 높은 학업 성취를 보이고 있다고 지목했습니다. 이는 부모들의 경제력과 신분이 대물림 되고 있는 한국이나 미국의 현실과 비교해 놀라운 현상입니다. 이는 저절로 얻어진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무엇이 정말 중요한가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공유고 있는 데서 온 것이고, 바로 그것은 개인적 성취보다도 함께하는 성취가 더 중요하다는 믿음입니다.

“남을 추월하기보다 도와 주어 함께 나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이들의 접근방법이 언뜻 보면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심지어 우리나라와 같이 이념적 냉전이 해소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공산주의적 발상”으로까지 보일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장 자본주의적인 다국적기업들의 업무 현장에서 리더십에 관해 컨설팅과 코칭을 하면서 거듭 발견하는 것은, 리더들의 성패는 결국 경쟁이 아니라 협동 능력에 의해 판가름 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지식과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이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전파하고 이를 잘 응용하도록 돕지 못하는 한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게 되고 맙니다. 또한 가르치면서 지식은 더욱 구체화되고 넓어집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의 질문을 통해 새로운 면들을 발견하게 되고 때로는 창조적인 통찰력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액션 러닝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일부러 주제에 관해 전혀 모르는 비전문가들에게 문제 해결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또 서로에게 공헌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지식의 응용력을 높일 뿐 아니라 공동체활동을 통한 정서적 교감과 리더십, 팀워크 등의 소프트스킬까지 얻게 됩니다.

핀란드의 이렇듯 특유한 교육 방식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수십 년에 걸쳐 단계적 개혁을 단행하며 수많은 난관들을 하나씩 극복해 온 결과일 뿐입니다. 영재학교나 지진아를 위한 특수학교 등의 차별을 없애 과감하게 평준화를 이루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고, 교사 후보들을 모든 대학교의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선발하여 5년간 석사과정에 이르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실시한 후 실제 교육 방법에서는 교과서를 최소화하고 교사들이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대폭 위임한 것 등 일관성 있는 개혁이 이루어져 온 것입니다. 미국과 아시아 등 온 세계가 경쟁 강화와 수월성 교육이라는, 그들의 반대편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을 흔들림 없이 지켜 나갔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얻어졌고, 이제는 세계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위치에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분명히 알고 있지 않았다면 결코 시도하지 못했을 그 대장정에 경의를 표하며, 혼돈 속에 빠진 한국의 교육계에 냉철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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